대학생 시절 농촌문제를 공부하는 세미나에서 여러 번 등장했던 사건이 있다. 1920년대 암태도 소작쟁의와 1970년대 함평 고구마 피해보상운동이다.
당시에는 그것을 농민운동의 역사로 배웠다. 40여 년이 지나 양평의 농협을 취재하면서 다시 그 사건들을 들여다보게 됐다.
질문은 의외로 단순했다.
농협은 왜 만들어졌는가. 그리고 지금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혼자서는 약했던 농민들이 뭉쳤다
1923년 전남 암태도 소작농들은 수확량의 7~8할에 달하는 소작료에 맞서 소작인회를 조직했다. 소작료를 4할로 낮춰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추수와 소작료 납부를 거부했다. 수백 명이 목포로 건너가 농성하고 단식했다. 결국 이듬해 소작료 4할에 합의했다.
혼자서는 지주와 협상할 수 없었던 농민들이 함께 움직이자 힘이 생겼다.
농업협동조합의 정신도 여기에서 멀지 않다.
농민 혼자서는 비료와 농자재를 싸게 사기 어렵다. 생산한 농산물의 가격을 결정하기도 어렵다. 판로를 확보하고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다. 여럿이 구매하고, 함께 판매하고, 공동의 자본을 만들자는 것이 협동조합의 출발점이다.
농협을 믿었는데 고구마가 썩었다
1976년 전남 함평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졌다.
농협의 고구마 수매 약속을 믿은 농민들이 민간 상인에게 팔 기회를 놓쳤다. 수매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기다리던 고구마는 썩어갔다.
농민들은 피해액을 직접 조사했다. 보상을 요구했다. 싸움은 18개월 가까이 이어졌다.
그리고 요구는 달라졌다.
1978년 4월24일 농민들은 피해보상뿐 아니라 ‘조합장 임면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철폐하라’고 요구했다.
고구마값에서 시작한 싸움이 결국 ‘농협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묻는 싸움으로 바뀐 것이다.

농협 민주화도 한국의 민주화와 함께 왔다
당시 조합장은 조합원이 뽑지 않았다. 중앙회장이 임면했다.
변화는 1987년 민주화 이후 본격화됐다. 농민들도 조합장 직선제와 농협의 민주화를 요구했다.
1988년 12월 「농업협동조합법」이 개정됐다. 조합원들이 조합장을 직접 선출하도록 했다. 법 개정 이유에는 ‘조합원의 조합운영 참여기회를 확대’하고 농협 운영의 ‘자율성과 민주성을 확보’한다는 목적이 명시돼 있다. 개정법은 1989년 4월 시행됐다.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자는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농촌에서도 농협의 주인을 조합원에게 돌려달라는 요구가 제도화된 것이다.
그러나 선거가 곧 민주주의의 완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양평 농협을 들여다본다
양평 농촌사회에서 농협은 단순한 금융기관이 아니다.
농업자금을 공급한다. 농산물을 판매한다. 일자리를 제공한다. 지역경제에서 적지 않은 자금과 조직을 움직인다. 조합장 역시 지역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는 자리다.
그렇다면 그 힘은 어떻게 통제되고 있는가.
조합원의 대표인 대의원회와 이사회는 제대로 작동하는가. 조합장과 임원의 보수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업무추진비와 경영정보는 조합원에게 충분히 공개되는가. 직원 채용은 공정한가. 부실대출이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지는가. 조합원은 집행부의 잘못을 실제로 견제할 수 있는가.
양평포스트는 양평지역 9개 농·축·산림조합의 경영과 의사결정 구조를 차례로 들여다볼 예정이다.
그러나 이번 취재의 목적은 조합장 몇 사람의 잘잘못을 가리는 데만 있지 않다.
양평처럼 산업기반이 약한 농촌에서 농협이 계약재배와 친환경농업, 스마트농업, 로컬푸드, 주민 SPC와 재생에너지 사업 등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도 함께 묻고자 한다.
100년 전 농민들이 서로 힘을 합친 이유는 분명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함께 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다시 묻는다.
오늘의 농협은 그 일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조합원은 선거 때만 농협의 주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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