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내 유력 언론사에서 20년 넘게 근무했다. 그곳에서 언론사가 권력을 감시하는 조직인 동시에 그 자체로 막강한 권력이라는 사실을 가까이서 보았다.

특히 검찰 출입기자가 단순히 수사기관을 취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회사의 이해관계를 방어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검찰과 언론사 사이의 보이지 않는 통로를 능숙하게 오간 이들은 어느새 조직의 더 높은 층에 서 있었다.

물론 개별 기자의 인사 배경을 외부에서 단정하기는 어렵다. 모든 검찰 출입기자가 그런 역할을 했다는 뜻도 아니다. 그러나 검찰 인맥을 통해 회사와 관련된 수사 동향을 파악하고, 사주의 이해관계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확보하며, 위기 때 방어막을 제공하는 능력이 조직 안에서 높이 평가되는 문화가 존재했던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내가 경험한 언론의 현실에서 ‘검찰 인맥’은 단순한 취재 능력이 아니었다. 때로는 회사와 사주를 지키는 자산이었다.

이런 경험에 비춰 보면 일부 언론이 검찰의 직접수사권 폐지에 유난히 격렬하게 반대하는 이유도 다시 물어야 한다.

검찰 수사권 폐지를 비판하는 모든 주장이 부당한 것은 아니다. 중대범죄 수사의 공백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경찰이나 새 수사기관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은 아닌지, 검찰에 축적된 수사 역량을 어떻게 승계할 것인지는 엄밀히 따져야 한다. 권력기관 개편은 구호만으로 성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 언론의 반대에는 이런 제도적 우려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완강함이 있다.

검찰의 직접수사권이 줄어드는 것을 국가의 수사 기능 전체가 무너지는 것처럼 과장한다. 검찰권을 민주적으로 통제하자는 요구를 ‘범죄자들의 방탄’으로 몰아붙인다. 정작 검찰권이 선택적으로 행사됐다는 비판과 검찰발 피의사실 공표, 별건수사, 언론을 통한 여론재판에는 같은 강도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그 이유를 언론 스스로 물어야 한다.

일부 기자와 언론사는 검찰을 감시해야 할 취재 대상이 아니라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권력의 공급처로 여겨온 것은 아닌가.

검찰은 수사 정보를 독점한다. 기자는 그 정보에 접근해 특종을 얻는다. 검찰이 제공한 혐의와 수사 논리는 기사로 확대된다. 그렇게 형성된 여론은 다시 수사의 정당성을 강화한다.

검찰은 언론을 통해 수사 명분을 얻는다. 언론은 검찰을 통해 특종과 영향력을 얻는다. 이른바 ‘검언 공생’이다. 감시자와 취재원의 정상적인 관계를 넘어 서로의 권력을 키워주는 폐쇄적 거래가 될 위험이 크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일부 기자가 검사와의 친분을 단순한 취재망이 아니라 사적 영향력으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내가 아는 검사에게 알아보겠다”는 말이 통하는 사회에서 검찰 인맥은 곧 권력이 된다. 자신이나 사주, 회사 관계자 또는 지인이 수사 대상이 됐을 때 사건의 진행 상황을 미리 파악하거나 선처를 부탁할 수 있다는 기대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취재 능력이 아니다. 법 앞의 평등을 훼손하는 특권 의식이다.

실제로 사건을 축소하거나 무마하도록 청탁했다면 그것은 언론의 자유가 아니다. 사법절차에 대한 부당한 개입이다. 다만 개별 사건의 청탁이나 무마 여부는 구체적인 자료와 증언으로 입증해야 한다. 막연한 의심만으로 특정 기자를 범죄자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밀실 접촉과 정보거래 관행에 대한 문제 제기까지 막을 수는 없다. 그런 의심을 낳는 관행이 존재한다면 언론은 이를 부인하는 데 그치지 말아야 한다. 검사와의 접촉, 정보 취득 과정, 회사 및 사주 사건에 대한 보도 원칙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일부 기자는 자신을 권력의 감시자가 아니라 권력의 일원으로 착각한다.

취재원에게 전화를 걸면 기관이 움직인다. 기사가 나가면 인사가 흔들린다. 검사와의 친분으로 남들이 알 수 없는 사건 정보를 먼저 얻는다. 이런 현실에 도취된 기자는 검찰개혁을 자신이 누려온 비공식 권력의 축소로 받아들일 수 있다.

검찰의 수사권을 지키려는 것인가. 검찰과 연결돼 행사해 온 자신의 영향력을 지키려는 것인가.

언론사 경영진과 사주에게도 검찰 인맥은 유용하다. 기업 수사와 세무 문제, 경영권 분쟁, 각종 고소·고발 사건에서 수사기관의 동향을 먼저 파악하는 것은 막대한 이익이 된다.

언론사가 검찰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는 동기가 취재 편의를 넘어 회사와 사주의 이해관계에 연결된다면, 그 매체의 검찰개혁 보도는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기자의 성공 기준도 왜곡된다.

권력기관의 문제를 얼마나 치열하게 파헤쳤느냐보다 검사들과 얼마나 긴밀한 관계를 맺었는지가 능력으로 평가된다. 국민이 알아야 할 사실을 얼마나 충실히 보도했느냐보다 회사의 위기를 얼마나 조용히 관리했는지가 충성심의 척도가 된다.

권력을 감시한 기자보다 권력으로 통하는 길을 관리한 기자가 조직의 계단을 더 빨리 오르는 구조라면, 그 언론사는 권력 감시기관이라 할 수 없다. 사적 이해관계를 지키는 또 하나의 권력조직일 뿐이다.

물론 검찰 출입기자 전체를 유착 세력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권력의 압박을 견디며 수사기관의 비리를 추적해 온 기자도 많다.

검찰의 직접수사권 폐지가 곧바로 정의로운 형사사법 체계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새 수사기관 역시 정치권력에 종속될 수 있다. 경찰권 비대와 수사 역량 저하도 현실적인 우려다.

하지만 이런 반론이 검찰과 언론 사이의 비정상적인 정보거래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검찰개혁의 기준은 어느 정파에 유리한가가 아니다. 수사와 기소가 적절히 견제되는가. 국민의 기본권이 보호되는가. 권력형 범죄를 독립적으로 수사할 수 있는가. 이것이 기준이어야 한다.

언론도 개혁의 예외가 아니다.

검찰발 정보를 받아쓰고 피의자를 유죄로 예단한 보도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 익명 수사기관 관계자의 일방적인 주장을 기사화할 때는 근거와 당사자의 반론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검사와 언론사 간부의 사적 접촉도 이해충돌의 관점에서 관리해야 한다.

언론은 검찰개혁을 논하기 전에 자신이 검찰권의 감시자였는지, 확성기였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검찰 수사권이 축소되면 일부 언론이 잃는 것은 특종 몇 건만이 아닐 수 있다. 검찰과의 친분을 이용해 정보를 독점하고, 타인을 압박하며, 필요할 때는 회사와 사주를 보호할 수 있다고 믿었던 비공식 권력일 수 있다.

그 권력은 헌법이 보장한 언론의 자유가 아니다. 시민이 언론에 위임한 권한은 더더욱 아니다. 밀실에서 만들어지고 조직 내부에서 보상받아 온 특권일 뿐이다.

검찰개혁에 반대할 자유는 있다. 그러나 언론은 먼저 답해야 한다.

지금 지키려는 것이 국민의 안전과 범죄 대응 역량인가.

아니면 검사와의 전화 한 통으로 누려온 자신들만의 권력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