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재 낙하와 주거위기 속에서 반복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던 김시우 씨의 사례를 보도한 뒤, 김씨에게서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지난해 10월부터 제가 어디에 무엇을 알렸고 그것이 어디에서 멈췄는지가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그 점이 가장 고맙습니다.”
오랫동안 민원을 제기해 온 사람의 답이라고 하기에는 뜻밖에 담담했다. 양평군을 비난하는 말도 없었다. 자신을 외면한 공무원을 탓하지도 않았다. 보상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가 고마워한 것은 단 하나였다. 자신이 누구에게 무엇을 말했고, 그 말이 행정의 어느 지점에서 멈췄는지가 기록으로 남았다는 것이었다.
취재 전에는 김씨를 두고 한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 반복적으로 전화를 하고 국민신문고와 감사·고발 절차까지 밟은 사람이라면 행정기관이 흔히 말하는 이른바 ‘예민한 민원인’은 아닐까.
취재가 진행될수록 판단은 반대쪽으로 기울었다.
김씨는 2025년 10월23일부터 양서면 복지팀에 다섯 차례 전화했다. 천장재가 떨어져 다쳤다고 했다. 전기가 나갔다고 했다. 혼자 살고 있고 다른 집으로 옮길 형편이 없다고 했다.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렸다. 국민신문고에도 다시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 정보가 긴급복지와 주거복지 담당 부서로 제대로 이어졌다는 기록은 확인되지 않았다.
김씨가 예민했던 것이 아니라 상황이 위급했다.
그런데 행정은 그의 말에서 ‘고통’을 읽기보다 ‘업무’를 나눴다.
면사무소 복지팀이 할 일, 군청 복지정책과가 할 일, 주택 담당 부서가 할 일, LH가 할 일이 따로 있었다. 각각의 설명은 가능하다. 문제는 그 사이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김씨가 이사를 검토하고 있던, 양수리 경수하이빌 302호는 2024년 2월부터 공실이었다. 김씨가 처음 구조를 요청했을 때보다 훨씬 전부터 비어 있던 집이다.
그 사실을 놓고 보면 자꾸 같은 생각이 든다.
양서면 복지팀 직원과 양평군 복지정책과 담당자, 과장, 주거복지 담당자, LH 관계자가 단 한 번이라도 한자리에 앉았다면 어땠을까.
“이 사람을 이 집에서 계속 살게 해도 되는가.”
이 질문 하나를 놓고 서로 가진 정보를 펼쳐놓고 30분이라도 진지하게 논의했다면 어땠을까.
군청과 LH 관계자가 김씨 집을 함께 찾은 것은 첫 구조 요청 174일 뒤였다. 그사이 천장재가 다시 떨어져 김씨가 다쳤다.
복지는 제도의 숫자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공무원이 주민의 말을 듣고, 그 말 속의 위험을 알아채고, 자신의 업무가 아니면 다음 사람의 손에 넘겨주는 과정까지가 복지다.
공감은 친절한 말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 문제를 누가 해결할 수 있는가”를 끝까지 찾아 연결하는 것도 행정의 공감이다.
김씨의 마지막 메시지에는 양평군을 향한 비난이 없었다. 오히려 그것이 더 마음에 남았다.
그는 누군가를 벌해 달라고 하지 않았다.
자신의 말이 어디에서 멈췄는지를 기록해 달라고 했다.
양평군이 이번 사건에서 먼저 읽어야 할 대목도 아마 그 문장일 것이다.
누가 잘못했는지를 따지는 것에서 끝날 일이 아니다.
또 다른 김시우가 면사무소에 전화했을 때,
그 사람의 말이 어디에서도 멈추지 않게 만드는 것.
그것이 이 취재가 양평군 행정에 남겼으면 하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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